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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권2호. '劍仙’ 金光澤 연구(허인욱)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
2010.06.29
첨부파일0
조회수
289
내용
허인욱(2008). '劍仙’ 金光澤 연구. 무예연구, 2(2),1-15 국문초록 光澤은 肅宗∼正祖代에 걸쳐 살았던 인물로 여겨지는데, 아버지는 倭劍을 訓練都監에 보급한 金體乾이다. 김체건이 왜검을 조선에 전파한 인물이라고 김광택 또한 아버지의 검술이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우리 무예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광택에 관해서는 柳本學이 지은 『問菴文藁』의 「金光澤傳」이거의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서술 내용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해많은 사실을 알아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아울러 『承政院日記』에도 김체건의 아들로기록된 김광택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어, 동일인으로 추정된다면, 그에 대한 사실을 좀 더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문암문고』의 「김광택전」과 『承政院日記』의 기록을 중심으로 김광택에 관한 사실들을 살펴, 우리 무예사 속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인물의 생애를 단편적이나마 복원해보고자 한다. 「김광택전」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그에 관해 정리해 보면, 김광택은1707년(혹은 1708년)에 태어났으며, 1787년(혹은 1788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아명은 노미였고, 초명은 국표였다. 그의 母는 寺奴婢였다가 연잉군(후에 영조)에게 사패로 내려졌고, 이로 인해 그의 나이 10세 때인 영조 1720년에 童奴로 영조의 시중을들었다. 이때 내의원 도제조로 재직하고 있던 이이명이 그의 이름을 광택으로 고쳐주었는데, 그는 이후 영조가 즉위하는 과정에서 홍봉한 가에 의탁하게 되었고, 영조 33년 11월에 이르러 영조의 부름을 받고 교련관에 임명되었으며, 영조 43년에 고금도첨사를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父 김체건으로부터는 검술과 글쓰기를 배웠으며, 김신선이라불린 김홍기로부터는 선도술을 배워 검선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김광택의 생애를 일부분 살펴봤는데,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자료의 발굴을 통해 보충해 보고자 한다. 그 동안 우리 무예사에서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던 무인을 되살리고자 했는데, 비록 부족한 시도였지만, 武 文化의 일부를 되살리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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